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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서 동학속으로] (11) 충남 논산·부여
[걸어서 동학속으로] (11) 충남 논산·부여
  • 이방희 기자
  • 승인 2024.09.02 18: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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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난의 역사를 되새겨야 한다.

   

 대한민국 근대사 130년 파란만장한 침탈 수탈의 역사 현장으로
 조국의 강역은 외세에 무참히 짓 밟히며 국민 주권 유린 당했다
 청일 러일전쟁으로 열강국 들의 전쟁 놀이터가 된 우리 강토는
 국민 주권 송두리채 뺏긴 경술국치 36년은 한 많은 시절이었다

 

 1945년 광복으로 주권 회복 기쁨도 잠시 좌우 이념 역사 현장
 1950년 동족상잔 피를 부르게 되고 강토는 다시 남북분단이다
 급조된 민주 정치는 역대 대통령들 줄줄이 비운으로 마감하고
 신 냉전 시대의 종말을 장식하며 우리는 동시대를 함께 살았다

 

 나라 운명을 외세에 의존했기에 강국에 짓밟히고 피로 물들며
 민족 역사 일군 혼령들과 함께한 우리 가슴속에는 피멍 들었다
 반만년 한반도 천혜의 자원이 턱 없이 부족했음에도 불구하고
 혼신을 다한 자식 농사와 교육으로 척박한 역사시대 개척했다

 

 우리는 단군 이래 최대의 경제 대국을 이루는 데 성공했으나
 각종 이기주의에 편승되었고 소유 소비 문화에 중심이 되었다
 사람을 소비자로 보고 욕망정복과 교육의 대상으로 보았기에
 계층 간 양극화는 심화되고 인명을 천시하는 풍조가 되어갔다

 

 나라를 걱정하는 애국지사들이 애간장을 태우고 있는 시점에
 나만 아는 나 뿐인 풍조를 후손들에게 대물림 해서는 안된다
 개인 집단 패거리 욕망이 국가의 존망을 흔들어도 아니 되며
 민족 중흥 세계 평화가 개인 이기주의에 우선해선도 안된다

 /백승기 박사 

논산 연산아문 문루. 동학농민군이 관아를 점령한 곳이다.

▲논산에서 동학 남접과 북접이 만나다 <윤재민 (주)RNS 대표, 신지식장학회 청년국장> 동학농민혁명은 1892년 삼례에서 첫 대규모 집회가 열리고 1893년에는 광화문에서 복합 상소를 하였다. 그리고 펼쳐진 보은 집회에서 척왜양창의를 내세우며 반봉건ㆍ반외세의 기치를 내세웠다

 이즈음 동학에서는 크게 북접과 남접으로 나뉘게 되었는데 이는 북접의 온건파와 남접의 강경파로 특징되었다.

 서장옥이 이끄는 남접은 정치적 개혁을 추구했던 조직이다. 동학농민혁명의 직접적인 전단계였던 1893년 3월 금구군 원평집회를 주도하고 손화중·김개남·김덕명·전봉준을 제자로 거느리고 새로이 ‘남접(南接)’이라는 세력을 구축하였다.

 남접(南接)은 동학신도가 다수 포함되어 있었으나 몰락 농민과 빈농 등 반봉건 세력과 동학에 입교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진 급진파 세력들이 이끌었다. 이들은 1893년 11월 사발통문, 1894년 1월 고부민란 등에서 보국안민이라는 정치적·사회적 원칙을 실천하고 개혁하였다.

 반면 북접은 최시형을 위시한 동학의 지도자들이 중심이 되는 온건파 세력들이 이끌었으며 교리적으로는 최제우의 신관에서 상제론을 거부하고 내제적 범신론을 주장하고 종교적 입장에서 교조신원운동을 주도했다

 하지만 서로 다른 길을 가던 남접과 북접은 마침내 일본의 외세를 몰아내는 대의에 함께 하기로 한다.

 손병희 장군의 북접 농민군은 청산에서 집결하여 옥천을 지나 논산으로, 전봉준 장군의 남접 농민군은 삼례에서 집결하여 목적지인 논산에 도착한다.

 남접과 북접 농민군은 논산에서 합류하여 논산대회를 개최하고 전봉준을 총대장 삼고 일본군과 일전을 준비한다.

 생각이 다르고 지향하는 바가 차이가 있지만 서로를 공감하고 모두가 공존하는 길로 함께하였기에 남접과 북접이 동학농민군으로 하나가 될 수 있었다.

 다름과 차이를 인정하는 공감이, 서로를 죽이지 않는 공존이 우리에게 더욱 절실한이유는 130년전 일본에 항전했던 동학농민군의 죽음 앞에 부끄럽지 않은 후손이 되기 위함이며 지금 우리 사회, 정치, 의료계의 갈등과 분열이 서로를 죽이고 스스로를 죽이는 공멸로 가는 것은 아닌지 되묻고 싶다.

 

논산연산아문 문루에서 김선덕 논산동학농민혁명계승사업회 회장으로부터 설명을 듣는 기획취재팀.

▲동학3대교주 손병희의 등장 <신동만 한국나그네연맹 회장> 최시형과 북접은 10월 2일 청산대회를 열어 손병희를 북접 통령으로 선출하고 1만 병력으로 공주를 향해 출정시켰다. 그동안 전봉준의 과격한 행동에 시기상조를 들어 배척하던 최시형과 북접이 드디어 무장투쟁에 합류하게 되었다.

손병희(孫秉熙)는 천도교의 제3대 교주이자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된 독립운동가다. 충청도 청주에서 향리의 첩실 소생으로 태어났다. 1882년 동학에 입도하여 최시형의 수제자가 되었다. 동학혁명의 좌절 후 탄압을 피해 중국에 피신하였다가 다시 일본으로 망명했다. 상하이와 도쿄 등을 돌아보면서 인재 양성이 시급함을 깨달고 1903년부터 24명의 똑똑한 청년들을 선발하여 일본유학을 시켰다. 귀국 후 동학을 천도교로 개칭하고 내부의 친일조직을 일소하였다. 박인호에게 천도교 교령을 승계하고 교육 사업(보성전문학교, 동덕여학단 인수)과 출판사업에 관심을 쏟았다.

1911년 강북구 우이동에 수만 평의 땅을 구입하여 봉황각(鳳凰閣)을 세우고 역사교육을 시행했다. 3년간 483명의 수련생을 배출하였는데 이들이 1919년 민족대표 33인 중 천도교 대표 15명이 되어 3·1 운동을 주도했다. 의암은 기미독립선언서 낭독 후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병보석으로 출옥한 후 1922년 5월 19일 서거하였다. 봉황각 옆 능선에 묘소가 있다.

동학을 노래한 신동엽 시인의 예술혼이 깃든 문학관.

▲ 이래서는 안된다.<김세용 전사들 산악대장>  외세를 끌어들여 민족의 운명을 바꾸려 한 조선의 정치는 썩어 문들어졌다.

 무기력한 국력을 한탄만 하고 있을 수 없었던, 팔도의 민초들이 동학의 깃발 아래 모두 모였던 1894년 그 해 겨울은 몹시도 추웠을 것이다.

 일본의 힘을 빌어 동학을 치러 우금치에 내려온 경군(京軍)과 민보군(民堡軍) 이들은 도대체 어느 나라 군대인가?

 당시 동학군은 누구와 싸웠던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동학은 일본과 싸운 것인가?

 아니면 정부와 싸운 것인가?

 정신 차리고 살펴 보아야 한다. 그래야 보인다.

    

신동엽문학관

▲한발씩만 더 내딛자 <고개희 전사들 사무총장, 교보생명 신논현지점장>  국가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백성이 나섰기에 나라를 구할 수 있었다.

 임진왜란 때도 의병과 승병이 힘을 모았기에 나라를 지켜낼 수 있었다.

 조상들께서 목숨 바쳐 지켜낸 역사가 있었기에 오늘 우리가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다.

 감사한 마음이다.

 조선말 동학군은 아름다운 조국의 강토를 지키기 위해 목숨 걸고 싸웠다.

 논산에서 납접의 전봉준 군대와 북접 손병희 교주의 동학군이 서로 손을 맞잡았으나 신무기로 무장한 관군과 일본군에는 역부족 이었다.

신동엽문학관.
신동엽문학관.

 임금과 대신들은 누란의 위기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제 살 불리고 나라 팔기에만 바빴다.

 정부의 도덕성은 붕괴 되었으며 선비의 양심마저도 무너진 상태로 백성과의 신뢰도 또한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현대의 정치 지형도 역사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대한민국 이대로는 안된다.

 민족의 단합된 힘을 모아야 한다.

 협치와 상생의 시대 위대한 대한민국의 길로 가기 위해 한발 씩만 더 내 딛기를 고대해 본다.

 

신동엽 시인 가옥터

 ▲나뿐이야 나뿐풍조가 있었다. <김설희 (주)그라투스 이사>  개인 이기주의와 나 뿐이야의 나뿐 풍조가 나라를 망쳤고 일본에 의지하며 조선을 송두리채 넘기고 말았다.

 동학군은 1894년 척양척왜를 외치며 삼례에서 2차 봉기 후 한양으로 가는 길목인 충청도 논산에 다시 집결하였다.

 백성들의 가슴 속마다 후손에게 물려 주여야 할 조국이 있었기에 이들은 손에 죽창 들고 나와 끝까지 싸우다 전사했다.

 그 수가 30만명 이상 이라고 한다.

 위대한 우리 조상들은 나라를 팔아먹은 나 뿐이야 나뿐 놈들의 나뿐 풍조를 남기지 않으려 애를 쓰셨다.

 

<기획취재팀>

▲취재기자단

△이방희 제2사회부장(부국장/팀장)
 

▲자문위원

자문위원
자문위원

△백승기 도시공학박사, ‘무릉도원 상상캠프’슈퍼바이저

△김주원 (주)뱅기노자 대표, 교사

△고혜선 안중근장군 전주기념관장

△고개희 전사들 사무총장, 교보생명 신논현지점장

△신동만 한국나그네연맹 회장

△윤재민 (주)RNS 대표, 신지식장학회 청년국장

△김세용 전사들 산악대장

△김설희 (주)그라투스 이사

△이주원 디자인 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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