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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 정리
텃밭 정리
  • 홍은영 인후초 교사
  • 승인 2024.09.11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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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방학이 끝나고 개학을 한다. 개학이 조금이라도 늦게 왔으면 하는데, 어찌나 쏜살같이 지나가는지…. 개학 전날 텅 빈 마음에, 방학 동안 내가 무얼 했나 달력을 쳐다보기도 한다.

아이들과 같이 무거운 마음을 가지고 개학 날, 학교로 간다. 밀렸던 방학 숙제 탓에 잠을 못 잤다는 아이도 있고, 스트레스만 받고 숙제는 못 했다는 아이도 있다. 학교도 와야 하는데, 숙제까지 있어 다들 마음이 편치 못했단다. 나에게도 다른 숙제가 있다. 방학 동안 돌보지 않은 텃밭 정리다. 방학 동안 텃밭은 ‘밭’이 아닌 ‘밀림’이 되어 있다. 비를 맞을 때마다 쑥쑥 큰 잡초들은 텃밭 채소들보다 더 키가 컸고, 그 사이 사이마다 빼곡히 잡초들이 가득하다. 방울토마토는 물을 잔뜩 머금고, 따가지 않은 주인을 탓하며 열매가 벌어져 터져있거나 땅에 떨어져 있다. 땅에 떨어진 열매들은 벌레들을 불러 모아, 아이들이 보면 기겁할 벌레들이 땅에 가득하다. ‘이 정도면 아이들도 정을 떼고 밭을 정리하겠지?’ 자기들이 심은 모종이라며 방학하기 전에 텃밭 정리를 한사코 말리던 아이들도 내 말을 이제는 들어줄 것이다. 긴 바지를 입고 오라고 당부하고, 밭에 들어가기 전에 모기 기피제도 많이 뿌렸건만 아이들 피부는 연약하다. 밭에 들어가자마자 모기가 물려 가렵다며 나온다. 몇몇 힘 좋은 아이들이 장갑을 끼고 뿌리를 뽑는데, 끝까지 나오지 않을 때도 많다. 그래서 텃밭 정리는 꼭 비 온 바로 다음 날 한다. 땅이 촉촉해야 잡초든 채소든 잘 뽑힌다. “와, 그 쪼끄만 모종이 이리 컸네요.” 자기 허리만큼 큰 채소를 들고 동민이가 말한다. ‘뿌리에 붙은 흙은 잘 털어라, 잡초와 채소 이쪽에서 말려서 버리자, 흙을 잘 다져놓자.’ 아이들과 함께 텃밭 일을 하는 건 내 입이 더 아프다. 차라리 나 혼자 하는 게 속 편하지 싶지만, 이 또한 아이들도 한번 겪어보면 좋겠지.

깨끗이 정리한 텃밭을 보며 ‘이제 가을배추랑 무, 당근 심으면 딱인데….’ 싶지만, 짧고 바쁜 2학기 욕심은 내려놓기로 한다. 봄에 심은 모종과 가을에 심은 모종은 크기부터 다르다. 그만큼 햇빛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몸으로 느끼게 해준다. (올가을은 너무 더워 지금 심어도 잘 자라려나 싶기도 하다) 아이들과 함께한 텃밭 공부는 여기서 이만, 잘 접어둔다.

 

홍은영 인후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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