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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의 독립운동가 - 광복군 부부(안춘생·조순옥, 박영준·신순호)
9월의 독립운동가 - 광복군 부부(안춘생·조순옥, 박영준·신순호)
  • 전북동부보훈지청
  • 승인 2024.09.02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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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의 독립운동가 - 광복군 부부(안춘생·조순옥, 박영준·신순호)

독립운동의 역사는 대를 이어 독립운동 명문가를 낳았다. 남다른 민족정신을 갖추며 성장한 독립운동가의 자제들은 자신도 독립운동가로 거듭나는 한편, 또 다른 인연을 맺어 독립운동 대가족을 일궈냈다.

안춘생·조순옥과 박영준·신순호, 이들은 독립운동의 대업을 가업으로 이은 광복군 부부이다. 구국정신을 상징하는 안중근가의 안춘생, 6형제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조정규가의 조순옥, 임시정부 수립의 산파 신규식가의 신순호, 대중 외교활동에 앞장선 박찬익가의 박영준, 이들은 독립운동 가문에서 태어나 한국광복군에 입대한 청년 독립운동가이자, 광복군 부부였다. 이들은 50년간 축적된 독립운동의 역량과 역사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독립운동가이다.

안춘생은 1912년 황해도 해주에서 안장근(안중근의사의 사촌형)의 차남으로 태어나 1920년대에 만주로 이주하였다. 양진학교에서 국어와 역사 등을 배우며 민족의식을 더욱 함양하였고, 1920년 일본군에 의한 한인대학살(경신참변)과 1931년 만주침공 후 중국인에 대한 일제의 탄압을 경험하며 항일 의지를 불태웠다. 1932년 윤봉길의거 소식을 듣고 중국 관내로 들어갔고, 이때 안정근(안중근의 동생)을 찾아가 도움을 받았다.

1934년 중국 중앙육군군관학교 한인특별반에 입교하여 중국군 장교가 된 안춘생은 신병들의 훈련을 담당하는 한편, 한국특무대독립군과 한국국민당 당원으로 활동하였고, 1937년 중일전쟁 후 중국군 장교로 참전하여 장완지구 전투에서 일본군과 교전하던 중 부상을 입었다.

중국군 장교였던 그는 중국 측과 접촉하여 임시정부 가족들의 안전을 도모하기도 하였고, 한국광복군의 토대가 된 군사특파단에 합류하여 활동하였으며, 광복군 제1지대에 배속되어 지역 한인들을 대거 포섭하였다. 1942년 조선의용대 병력 등의 합류로 광복군이 개편되자 광복군 제2지대 제1구대장을 맡으며 미국과 공조하여 국내 진공 작전을 추진하였다.

광복 후에는 중국군 포로가 된 일본군 출신 한인병사들을 구출하여 잠편지대를 편성하는 역할을 수행하였고, 1946년 6월 귀국하여 육군사관학교 초대 교장과 제8사단장 등을 맡은 후 전역하였으며, 이후 광복회 회장, 독립기념관 초대 관장 등을 역임하며 독립정신 선양에 앞장섰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하였다.

조순옥은 1923년 독립운동가 부부인 조시원·이순승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친 조시원이 한국독립당의 주요 인사로서 한국광복군 창설에 참여하여 1940년 광복군 총사령부의 부관이 되었을 때 조순옥은 한국광복군에 입대하였다.

그녀는 부친 조시원과 함께 최전방 시안으로 이동하여 총무처에서 근무하였고, 이때 함께 파견나간 안춘생과 이후 부부의 연을 맺었다. 1942년 광복군 제2지대 제1구대원이 된 그녀는 구대장 안춘생과 함께 적 점령지구에 있는 한국인 청년과 일본군 포로 등을 포섭하여 대적활동을 전개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박영준은 1915년 만주에서 박찬익의 3남으로 태어나 임시정부의 대중 외교를 책임지던 부친과 함께 이곳저곳을 전전하며 지냈다. 1937년 창사에서 임시정부에 합류하였고, 1938년 한국광복진선 청년공작대에 참여하여 항일선전 활동을 전개하였다.

1939년 한국청년전지공작대 대원이 된 그는 항일예술, 문화활동을 전개하였고, 중국 중앙군관학교 특별훈련반 졸업한 후 한국광복군 창설 후 합류하여 1943년 총사령부 서무과장에 임명되었고, 같은 해 신순호와 결혼하였다.

1945년 광복군 제3지대 제1구대장이 된 박영준은 적진에서 선전·정보활동을 전개하고 병사들을 모집하며 활약하였다. 관내 요충지인 카이펑지구에서 광복을 맞이한 그는 포로가 된 한인 병사들을 석방시켜 광복군 잠편지대에 배속시키는 임무를 수행하였고, 그의 가족은 중국에 남아 임시정부의 전후 외교를 도맡았으며, 1949년 귀국 후 안춘생과 함께 육군 창설에 참여고 한국광복군동지회장 등을 맡으며 독립운동의 위업을 선양하는데 앞장섰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하였다.

신순호는 1922년 신건식과 오건해 사이에서 태어나 1926년 상하이로 건너간 후 임시정부가 대장정을 시작하면서 부모를 따라 고난을 함께 하였다. 17세 때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에 참여하여 독립운동에 투신하였고, 한국광복군 창설 후에는 총사령부에서 근무하였다.

1943년 박영준과 결혼하였고, 광복 후 박영준과 함께 주화대표단의 교민 보호 활동에 앞장섰으며, 임시정부의 업무를 마무리하고 대중 외교활동을 책임지며 활동하다가 1949년 귀국하였다. 독립운동을 시작하여 평생을 함께 한 부부는 국립서울현충원에 함께 잠들어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수여하였다.
 

 전북동부보훈지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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