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지노 검증사이트

[조석중의 북트렌드] (98) 허송세월 속에서 발견한 삶의 깊이
[조석중의 북트렌드] (98) 허송세월 속에서 발견한 삶의 깊이
  • 조석중 독서경영 전문가
  • 승인 2024.08.27 15: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 인생 책입니다.”

 자주 가는 서점의 주인이 책을 사는 필자에게 웃으며 말한다. 평소에도 많은 책을 접하고 권하는 일을 하시던 분의 이야기라 책에 대한 기대감을 한층 더 높여줬다. 작가 김훈이 5년 만에 내놓은 산문집 <허송세월>은 두 달 전 (24년 6월) 출간되었다. ‘연필로 쓰기’ 이후 첫 에세이이며, ‘하얼빈’ 소설 이후로는 2년 만의 작품이다. 살아봐야 삶이 되듯이, 작가의 생각과 세월이 모여 글이 되었다.

 작가의 글은 묵직하지만 무겁지 않다. 한 글자, 한 문장마다 날카로운 성찰이 배어 있고, 시대를 가로지르는 통찰이 담겨 있다. 죽음, 부고, 입원, 술과 담배에 대한 고백은 인간적이면서 솔직함이 담겨 있다. “핸드폰에 부고가 찍히면 죽음은 배달상품처럼 눈앞에 와 있다. 액정화면 속에서 죽음은 몇 줄의 정보로 변해 있다. ”첫 문장은 늙어가는 즐거움을 이야기하면서 삶과 죽음이 맞닿아 있는 현실을 섬세하게 포착해 내는 지점들이 많다.

  “혀가 빠지게 일했던 세월도 돌이켜보면 헛되어 보이는데, 햇볕을 쬐면서 허송세월할 때 내 몸과 마음은 빛과 볕으로 가득 찬다. 나는 허송세월로 바쁘다.” 현실을 치열하게 살아야만 보이고 깨달을 수 있었던 것들이 이제는 자연스럽게 보이고, 그것을 표현하는 경지에 이르렀다고 할까. 책의 문장 하나하나가 삶의 궤적을 따라 쌓여온 경험과 생각의 결과물처럼 다가온다.

 ‘밥, 부고, 장례, 입원, 말하기 듣기의 어려움’ 등 개인적인 경험의 고백, ‘저출산, 산재 사망, 혼밥, 혼술, 비빔밥’ 등의 현안을 김훈만의 문장으로 표현해낸다. 이념은 무겁지만, 그 무거움을 가볍게 받아들이는 법을 통해 삶의 의미를 함께 생각해 보게 한다.

 필자는 이 책과 함께 즐거운 경험을 했다. 책을 함께 읽는 독서 모임 회원들과 2주 동안 이 책을 필사하고 단체 SNS에 공유했다. 매일 자유롭게 책 속의 문장 중에서 한두 개씩을 손끝으로 옮겼다. 필사는 가장 느린 독서라고 불린다. 옮겨 쓰는 일은 단순한 반복 작업이 아니라 깊은 사유, 몰입, 글의 본래 의미와 언어의 힘을 깨닫게 한다. 김훈 작가의 글을 필사한다는 것은 어쩌면 책 읽기의 ‘허송세월’이다. 문장의 무게와 가치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김훈 작가의 책을 읽고 필사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 세월은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고, 끊임없이 말을 걸고 있지만 그것을 잘 듣지 못하는 요즘 사람들에게 던지는 작가의 질문들이었다. 책에는 글쓰기를 통해 부지런히 바라보고 성실히 생각한 작가의 삶이 녹아있었기 때문이다. 인생의 경계에 서서 던지는 작가의 사유 기록은 담담했다. 인생의 깊이를 성찰하고 싶은 사람, 삶의 무게를 가볍게 문장을 통해 바라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글 = 조석중 (독서경영 전문가)

 

 소개도서

 《허송세월》 김훈 / 나남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전북 전주시 덕진구 벚꽃로 54(진북동 417-62)
  • 대표전화 : 063-259-2101
  • 팩스 : 063-251-7217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재춘
  • 법인명 : 전북도민일보
  • 제호 : 전북도민일보
  • 등록번호 : 전북 가 00002
  • 등록일 : 1988-10-14
  • 발행일 : 1988-11-22
  • 발행인 : 신효균
  • 편집인 : 신효균
  • 전북도민일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전북도민일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email protected]
ISSN 2635-98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