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지노 검증사이트

구자훈 씨 좌충우돌하면서 정착한 임실에서의 삶
구자훈 씨 좌충우돌하면서 정착한 임실에서의 삶
  • 임실=박영기 기자
  • 승인 2024.08.12 15: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리에게 주신 관심과 사랑만큼 저희도 더욱 노력해서 마을에 꼭 필요한 이웃 그리고 가족이 되겠다고 다짐합니다. 저희의 귀농 이야기가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이 이야기를 듣고 귀농을 생각해 볼 누군가를 바라봅니다. 사과농사 지으면서 우리식구 모두 건강한 것만으로도 저는 그저 행복합니다”

지난 2012년 관촌면으로 귀농한 구자훈(52) 씨의 소감이다.

서울에서 결혼해 대입 수학 과외 선생님으로 하루도 빠지지 않고 10년 넘게 과외를 하다 보니 돈은 벌었지만 대신 항상 쉬는 날이 없었다.

입시생에 맞춰서 스케줄을 짜다 보니 대입 스트레스와 과로로 인해 몸과 마음도 점점 지쳐가고 돈과 시간의 노예가 되어가는 제 자신을 느끼면서도 그 생활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다가 몸에 이상이 있어 병원에 갔더니 대상포진이라는 진단을 받았고, 면역력이 낮은 노인들이 걸리는 병이었기에 충격이 컸다. 과외는 출근을 늦게 하지만 새벽까지 일하고 들어올 때면 아파트가 저를 더욱 답답하게 만들었다. 막연하게 탁트인 자연 속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에 시골로 귀농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집 안의 반대 속에 일하니 얼굴은 점점 어두워지고 과외가 싫증나기 시작했다. 이런 나의 모습을 보고 아내가 ‘한 번뿐인 인생인데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귀농하는 것을 허락했다.

인터넷으로 여러 곳을 찾아본 결과, 아내와 함께 결정한 곳이 장수군이다. 마을 이장님은 1천500평의 사과밭 조성과 300평의 오미자 밭을 조성하는데 많은 도움이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평생 삽질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 저에게 농사는 버거웠는데 설상가상으로 트럭을 운전하다 교통사고가 발생해 차와 돈은 날리고 정신적 육체적으로나 매우 힘들었다.

또한 아내는 우울증마져 발생해 ‘도저히 농촌에는 살지 못하겠다.’는 아내를 위해 손해를 무릅쓰고 헐값에 사과밭을 팔고 콩으로 유명한 지금의 임실군 관촌면으로 2012년 전입했다.

2012년 9월에 영농후계자로 선정된 구 씨는 땅을 구매하고 임대한 땅을 포함해서 만평 가까이 고추, 벼농사, 콩을 심었는데 수중에 들어온 돈은 천만 원도 되지 않았다.

그런던 중 지난 2015년에 장수에서 인연을 가진 이장님의 도움으로 1천200주의 사과밭을 조성하고 매입한 땅의 일부인 200평을 대지를 변경, 29평 집도 짓고 이제야 모든 것을 갖추는듯 했다.

하지만 나에게 또 한 번의 시련이 찾아왔다. 2017년 원인 모를 화재로 집과 농기계, 사과 수확 박스 등 모든 것이 화재로 인해 한순간에 잿더미로 변했다.

그때 임실 군수님과 공무원 수십 명이 와서 화재 잔해를 정리했으나 집과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그해에 어머니 상과 기후변화로 모든 것을 버려 ‘도시로 다시 나가야 하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주위 주민들은 가족이 아무도 다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며 위로와 격려를 해 주셨고, 마을회관에서 무료로 지내게 해 주셨다. 동네 분들이 각종 반찬을 만들어서 매일 가져다 주고 십시일반 모았다면서 돈 봉투를 건네주기도 했다.

그때 나는 살면서 동화책에서 읽었던 이웃의 사랑과 정을 느꼈다. 덕분에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고 다시 일어날 용기를 얻었다.

지금은 사과 6천평과 콩 농사 2천 평 정도 짓는 전업농이 되었다. 아내도 노인회 총무 봉사를 하면서 회계 및 장보기 심부름 등 할 수 있는 일은 도와주고 있다.

3년 전부터는 임실 사과 작목반 회장이 되어 회원들과 임실군 사과농사의 발전을 위해 회원들과 한 달에 한 번씩은 만나 공부도 하고 아내는 식품가공 기능사 자격증을 획득해 생 사과즙, 사과잼, 사과말랭이 등을 만들어서 직판도 하고 임실군 치즈 축제나 각종 행사에서 판매했다. 또한 콩은 농협에 전량 수매하고 타작 도중 깨져서 상품성이 없는 것은 메주나 청국장 등으로 만들어서 판매하고 있다.

올해는 군에서 E비즈니스 교육을 듣고 농사 유투버에 도전하고 농사 유튜브를 운영하니 새내기 농부들의 질문도 답변해 줄 수 있는 좋은 기회도 생겼다. 서울에서 살면서 좋은 대학, 좋은 직장, 비싼 아파트, 더 돈을 많이 벌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마음을 떠올려 본다. 이제는 누군가 도시로 다시 가라고 한다면 답답해서 못 살 것 같다. 귀농 후 성공 기준과 가치는 모두 다르겠지만 저는 성공했다고 자부한다. 서울에 살 때보다 더 일찍 일어나 일하고 더 늦게 집에 들어가더라도 복잡한 도심 속 느낄 수 없었던 행복감을 매일같이 느끼고 있다. 덕분에 대상포진도 재발하지 않았고, 아내 또한 들에서 자연을 더불어 사니까 우울증도 없어졌다. 우리 네 식구 모두 건강하고, 아이들이 학교 잘 다니며 건강한 음식, 우리가 농사짓거나 들에서 뜯은 나물반찬을 먹고 있다. 흙을 밟고, 풀냄새 맡으며 들이라는 직장에서 하늘이 허락한 만큼 내가 땀 흘린 만큼 수확하고 얻는 삶에 감사하고 자연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어 언제나 행복하다.

임실=박영기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전북 전주시 덕진구 벚꽃로 54(진북동 417-62)
  • 대표전화 : 063-259-2101
  • 팩스 : 063-251-7217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재춘
  • 법인명 : 전북도민일보
  • 제호 : 전북도민일보
  • 등록번호 : 전북 가 00002
  • 등록일 : 1988-10-14
  • 발행일 : 1988-11-22
  • 발행인 : 신효균
  • 편집인 : 신효균
  • 전북도민일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전북도민일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email protected]
ISSN 2635-9898